요즘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markdown 문서를 읽는 데 보낸다. AI에게 계획을 세우도록 시키면 긴 문서가 돌아오고, 분석을 요청하면 또 긴 글이 나온다. 코드 리뷰도, 전략 문서도, 심지어 요약본조차도 읽어야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점점 짧아지는데, 왜 나는 점점 더 많이 읽고 있는 걸까.
Nicholas Carr는 2008년 The Atlantic에 기고한 에세이 〈Is Google Making Us Stupid?〉에서 자신의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Once I was a scuba diver in the sea of words. Now I zip along the surface like a guy on a Jet Ski."
깊이 잠수하던 사람이 수면 위를 빠르게 달리는 사람이 됐다는 고백이다. 그는 2010년 《The Shallows》에서 이 변화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분석했다.
"The Net is designed to be an interruption system, a machine geared for dividing attention." "When we go online, we enter an environment that promotes cursory reading, hurried and distracted thinking, and superficial learning."
인터넷은 집중을 흩트리도록 설계된 환경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피상적으로 읽는 법을 학습해왔다. 틱톡과 쇼츠는 그 흐름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그런데 이 흐름이 AI 시대에 와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AI와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장면을 경험했을 것이다. AI가 그럴듯한 계획서를 내밀고, 나는 훑어보고 "좋아 보이는데"라고 넘어간다. 그런데 며칠 뒤, 그 계획서의 어딘가에 묻혀있던 잘못된 전제 하나가 실제 작업에서 터진다.
Ethan Mollick은 《Co-Intelligence》에서 AI의 이 특성을 정확하게 짚었다.
"LLMs are, in a technical sense, bullshit machines — they generate text that sounds plausible without any commitment to truth."
그러면서 그는 AI 협업의 올바른 자세를 이렇게 제시했다.
"Think of yourself as the editor of an AI's work, not just its user."
사용자는 출력물을 소비하지만, 편집자는 출력물을 읽는다. 그것도 꼼꼼하게. Mollick이 말한 '편집자'가 되는 데 필요한 핵심 역량은 결국 읽기다.
"The most important skill when working with AI is knowing when it is wrong. That requires expertise, judgment, and — above all — the ability to read carefully."
Paul Graham은 2022년 에세이 〈Putting Ideas into Words〉에서 이런 말을 했다.
"Writing about something, even something you know well, usually shows you that you didn't know it as well as you thought."
쓰는 행위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읽기도 마찬가지다. AI가 쓴 긴 문서를 꼼꼼히 읽다 보면, 내가 그 주제에 대해 얼마나 얕게 알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Graham이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명제 — "Writing is thinking. If you can't write clearly, you can't think clearly" — 는 이 시대에 읽기로도 확장된다. 읽기는 단순한 정보 소비가 아니라 사고의 과정이다.
AI의 출력물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것을 '사고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리고 사고하면서 읽는 능력은 Carr가 말한 '제트스키 뇌'로는 불가능하다.
Cal Newport는 《Deep Work》에서 집중력의 경제학을 이렇게 정리했다.
"The ability to perform deep work is becoming increasingly rare at exactly the same time it is becoming increasingly valuable in our economy."
그는 그 반대편을 이렇게 불렀다.
"Shallow work: Non-cognitively demanding, logistical-style tasks, often performed while distracted. These efforts tend not to create much new value in the world."
AI 출력물을 대충 훑는 것은 정확히 이 shallow work다. 반면 AI가 제안한 계획의 전제를 하나씩 따져가며 읽는 것은 deep work다. Newport는 《Digital Minimalism》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A deep life is a good life, but it's not a comfortable life. It demands that you spend time with hard things."
긴 AI 문서를 집중해서 읽는 것은 불편하다. 결론부터 보고 싶고, 중요한 부분만 골라 읽고 싶다. 하지만 AI의 오류는 대개 그 '중요해 보이지 않는' 부분에 숨어있다.
이런 감각을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닌 것 같다. Hacker News에 올라온 한 스레드 — "AI를 잘 쓰려면 독해력이 핵심" — 에는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I've started failing at tasks with AI not because I couldn't prompt it, but because I couldn't carefully read its 3,000-word output to spot the one wrong assumption buried in paragraph 7."
"The bottleneck isn't generating content anymore. It's evaluating it. And evaluation is reading."
"Ironically, working with LLMs has made me a better reader. I have to be — it's literally in the contract now."
생성의 병목은 사라졌다. 이제 병목은 평가다. 그리고 평가는 읽기다.
여기서 한 가지 경고를 하고 싶다.
AI는 일을 쉽게 만들어주지만, 독해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큰 위험이 된다. Mollick이 말한 것처럼 AI는 틀린 정보도 자신 있게 쓴다. 논리적으로 그럴듯한 문장으로 포장된 오류를 걸러내지 못하면, 그 오류는 그대로 판단에 스며든다. "AI가 그랬으니까"라는 말로 잘못된 결정이 실행된다.
Carr가 경고한 '스캐너 뇌' — 수면 위를 달리는 제트스키 — 로는 이것을 막을 수 없다. 독해력은 교양의 문제가 아니다. AI 시대에는 판단력의 문제다.
역설이 하나 있다. 세상은 더 짧은 것에 익숙해지고 있는데, AI와 제대로 일하려면 더 길고 깊게 읽어야 한다. Carr가 경고한 문제와 Newport가 말한 해법이 AI라는 맥락에서 정면으로 만난다.
AI를 잘 쓰고 싶다면, 먼저 긴 글을 잘 읽는 연습이 필요하다. 결론부터 찾는 습관, 중요해 보이는 부분만 건져내는 습관 — 그 습관이 AI 시대에 발목을 잡는다. Graham이 말한 '사고하기 위한 읽기', Newport가 말한 '깊은 집중', Carr가 경고한 '스캐너 뇌의 위험'. 이 세 가지가 지금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당신은 AI가 쓴 글을 얼마나 깊이 읽고 있는가.